꼭 그렇더라 나에게 호감 있는 한국 여자들. 물론 다 그런 건 아닌데 확실한 패턴이 보인다. 한국 남자는 어쩌고 저째서 별로래. "한국 남자는 여자가 예쁘고 마르고 여성스러워야 좋아해." "한국 남자는 여자가 기 세면 싫어해. 한국 남자는 너무 보수적이야." 어쩌고 저쩌고의 기타 등등을 내게 서슴없이 말한다.
근데 어쩌지? 나도 예쁘고 마르고 여성스러운 여자 좋아해. 기 센 여자 싫어해. 그리고 생각보다 보수적이야. 바다 건너왔다고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지? 너무 편견 아니니? 내 머리 위에 성조기 표시라도 있나. 미국남자라고 모든 것에 개방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여자들은 말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말이 통했으면 좋겠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됐으면 하기도 하고. 참. 한국남자 같지 않으면서도 어쩔 땐 한국남자와 얼핏 비슷해 보이는 상대를 원하는 거지.
그래서 나. 재미교포 2세.
단 LA나 NY에서 자란 사람 아냐. 한인이 거의 없는, 영화에서 흔히 불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옆집과 똑같이 생긴 단독주택이 즐비한 '평범한 미국적인 동네'에서 왔다. 동부와 서부 사이 어딘가. 구체적으로 어딘지 말해도 어차피 잘 모를 테니까 그냥 말 안 할게.
그리고 난 성인이 될 때까지는 한국말도 못했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한국 부모가 키워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나와 비슷하게 자란 교포들은 거의 다 그래. 한국말 안 하고 살았어. 부모님이 워낙 바쁘셔서 그런 교육시킬 시간도 힘도 없었거든.
우리 부모님은 80년대 초반에 이민 가셨어. 그땐 다들 돈이 없어서 미국으로 넘어갔지. 요즘은 돈이 있는 집들이 더 많이 건너간다.
그래서 말인데 난 어렸을 때 이민 갔거나 LA나 NY처럼 한인이 많은 지역에서 자란 애들보다 많은 면에선 더 한국적이다.
설명: 어렸을 때부터 한국말을 할 줄 알고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애들은 자기가 한국을 당연히 잘 안다고 방심해. 그래서 잘 몰라. 한국어나 한국을 진심으로 연구해본 적 없어.
갑작스레 고향과 가족을 떠나서 타지에서 모국어 사용을 최소화하려고 일부러 친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를 안 사귀고 이해 못하는 외국어로 된 방송과 신문기사, 책, 간판, 표지판, 우편물, 남들의 대화 조각들, 온갖 잡다한 글자와 말에 매달린 적 있니. 있다면 알 거야.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서 새싹이 조금씩 돋아난다는 것을. 그 새싹이 세월을 거쳐 모국어와 독립된 공간에서 자란 나무가 된다는 것을.
많은 교포와 유학생들의 머릿속엔 나무가 하나가 있어. 한국어로 된 가지와 영어로 된 가지가 뒤엉켜 있는 아주 거대한 나무. 하지만 난 두 그루야. 나의 한국어 가지는 영어 가지와 닿지 않아. 별도로 키워냈거든. 당신은 내 영어 나무에 닿지 못해. 거기까지 닿으려면 시간 여행을 통해 내 어린 시절에 자신의 모습을 주입시켜야 해. 닿지 못하겠지만 구경은 가끔 시켜줄게.
그리고 난 거기에 닿을 수 있는 여자를 안 만나. 원치 않거든.
미드를 좀 봤다고 미국 남자를 안다고 착각하지 마. 그거 다 여성 시청자를 위해 제작된 거야. 한국드라마에 빠져서 한국남자 만나고 싶어 하는 동남아 여자처럼 되고 싶니.
커플룩에 적극 참여하고 이벤트 많이 해주고 기념일 다 챙겨주고 계산을 7대3으로 하고 카톡과 전화를 자주 해주고 말을 자상하게 하는 책임감이 강한 남자가 좋니? 그럼 한국 남자 만나. 미국남자는 그렇게 안 해. 한국남자가 다 그렇게 안 한다고? 누가 모르니. 근데 미국남자는 걍 없어. 걍. 있으면 뭔가 수상하다고 봐야 할 거야.
일반화라고? 맞아. 근데 당신들이 먼저 했잖아. 일반화. 미국인과 교포에 대해. 그리고 한국남자에 대해.
당신들 지켜본 결과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 행복이 생각보다 단순한 거라 모순과 욕심, 복잡성으로 가득 차면 행복을 못하는 마련이지. 알아, 나도 그렇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행복을 못하는 거지.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을까, 당신이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
기분 나빴다면 신경 쓰지 마. 그냥 한 남자의 쌉소리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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